류나의 작은 DB

27살 류나의 바르고 다르게 살기

Diary

About Me

Ryuna (류준범) 2020. 7. 18. 23:24

블로그를 새로 열며, 제가 걸어온 길을 정리해 보려 합니다.

 

대학교 입학 이전 (2010~2014)

수학 블로그 활동

저는 똑똑한 아이였습니다. 공부를 좋아했고(!) 배운 내용을 남들과 나누고 설명하는 것도 좋아해서 2010~2011년에는 수학 공부를 한 내용을 블로그로 정리하기도 했었습니다. 많은 또래 아이들이 방학 숙제 때문에 끙끙대다가 제 블로그에서 답을 얻고 감사하다는 댓글을 많이 받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ㅎㅎ 그때부터 제 인터넷 활동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겠네요.

공부를 잘 하는 아이

중학교 1학년 때부터는 전교 1등을 도맡아 했고, 수학 과목을 특히 좋아해서 올림피아드 공부를 혼자 하여 중학교 3학년 때는 KMO 1차 전국 동상, 서울시 동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제 꿈은 수학자, 구체적으로는 서울대학교의 수리과학부 교수가 되는 것이었고 그 꿈과 높은 학구열, 성적 등을 어필하여 지방의 한 자사고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자사고 입학과 일반고 전학

자사고에 입학을 했고 교내 수학 동아리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당히 합격, 첫 학기 내신 성적까지 괜찮게 나왔지만 단체생활이 쉽지 않아 많은 내적, 외적 갈등을 겪게 됩니다. 사실 사춘기 남자애들을 8명씩 한 방에 몰아넣으니 갈등 없는 방이 있다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이겠지요. 2학기 성적이 심각하게 떨어진 상태였고 결국 학년말에 가족과 의논하여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는 취지로 전학을 결정했습니다.

학업적인 전성기

일반고에서 보낸 2, 3학년은 정말 공부만 잔뜩 한 시기였습니다. 자사고에서는 내신, 수능과 관계없는 수학 공부도 나름 했지만, 일반고에서는 완전히 성적을 따내기 위한 공부에만 전념했습니다. 결과는 무척 좋아서 2학년 1학기부터 3학년 2학기까지 내신 평균등급 1.0을 유지하며 3학년 6월 모의고사 395/400점, 9월 모의고사 389/400점 등 대수능 모의고사 성적도 높았습니다.

수능

대망의 2015 수능. 사실 당시 정부의 쉬운 수능 기조와 함께 직전 9월 모의고사 1등급 커트라인이 국영수 모두 100점으로 형성되는 등 수능이 쉬울 거라는 건 기정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역대급 쉬운 수능이 나왔는데, 수학 29번 문제에서 최댓값을 최솟값으로 읽는 참사가 발생하는 바람에 인생 첫 수학 2등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조마조마하던 생2까지 등급컷에 딱 걸려 2등급이 나와서, 수능 직전까지 자신감이 넘쳤던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서울대 수시 탈락과 정시 합격

수능날 수학 등급컷이 100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눈물이 터졌습니다. 다음날 학교도 우느라 늦게 가고, 멘탈 부여잡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논술전형으로 지원했던 대학들의 수능 최저등급 '3개 1등급'을 못 맞췄거든요. 그래도 그토록 가고 싶어하던 서울대 수리과학부 면접 준비에 최선을 다했고 생2 복수정답이 터져서 1등급이 되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면접 문제는 지금까지 공부했던 수능식 수학 문제와는 거리가 멀었고 결국 서울대를 포함해 수시 지원한 6군데를 모두 불합격하게 됩니다. 그나마 KAIST에 최종 합격하여 위안이 됐지만 자사고 시절을 생각해 보면 지방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학교에서도 서울대 정시 지원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어 결국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에 정시 지원 및 최종 합격을 하였습니다.

2015~2016년

합격의 기쁨도 잠시

서울대에 합격하고 OT에 갔을 때부터 저와 맞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여태까지 살면서 '공대'와 '전기정보공학'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었는데 자기소개를 들어보니 다들 큰 꿈을 갖고 들어온 것 같더라구요. 의대에 동시 합격했는데도 포기하고 온 동기들도 있었고요.  그런데 저는 뭘 하려고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에 들어간 걸까요? 그 때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 적응하고, 원래의 꿈이었던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수학과 과목들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학과 적응 단계부터 잘 되지 않았습니다. 우선 당시 공대의 술 퍼마시는 분위기가 문제였습니다. 저는 나이가 좀 든 지금이야 술을 싫어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겁을 많이 먹어서 피해다녔는데 선배들이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신입생들에게 엄청 눈치를 주었고 개강파티에서 술 안 마시고 혼자 앉아있다가 선배한테 '넌 마이웨이나 해야겠네'라는 빈정거리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저는 그 일로 상처를 받아 학과 생활에 일절 참여하지 않고 반수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목표 없는 반수와 실패

반수를 위해 재수학원까지 알아봤으나, 어느 대학의 어느 학과를 목표로 할 것인지가 문제였습니다. 의대를 가기에는 이미 공대의 술 마시는 분위기에 상처를 받았는데 의대에서는 더 상처받으면 받았지 덜 받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서울대 수리과학부를 다시 노리기에는, 서울대에 전과 제도가 멀쩡히 있는데 굳이 주위의 눈총을 받으며 반수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재수학원에 등록하지 않고, 그냥 '수능 잘 보면 갈아타고, 아니면 말고' 식의 무휴학 반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연히 목표가 불명확한 반수가 잘 될 리 없었고, 수능 전날에 가서야 상황의 심각함을 알고 눈물을 흘리며 수능장에 입장, 지난해 수능보다 못한 성적표를 받아야 했습니다.

수학 공부도 쉽지 않았다

반수에 실패한 후, 전기과에 다시 발을 들이기 싫었던 저는 어떻게든 전과를 하기 위해 전기과 전공 대신 수학과 전공을 무더기로 수강신청했습니다. 그리고 통학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 마음을 다잡기 위해 자취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설렘과 함께 시작한 수학 전공 공부는 생각보다 높은 체력을 요구했습니다. 짧게 설명드리기는 어렵지만 고등학교 때까지와는 다른 유형의 공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 달만에 대규모 드랍을 하면서 '수학 공부를 제대로 해 보겠다'는 의도 자체가 퇴색되었고, 남은 과목들은 그나마 재수강을 면할 정도의 성적을 받았지만 전혀 만족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우울증과 학사경고

당시의 저는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느꼈나 봅니다. 서울대 입학 전까지의 나와 입학 후의 나를 완전히 다른 존재로 규정하고, 전자와 후자를 비교하며 끊임없이 후자를 깎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일 몇 시간씩 울면서 가족을 힘들게 했고, 보다 못한 가족들과 크게 다투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습니다.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고 울면서 보내는 시간은 줄었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2학기에는 반수 때도 받지 않았던 F를 받으며 학사경고를 받았습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가 많은 저이지만 그 때로만큼은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옥같은 시기였습니다.

2017년~2018년

나를 수렁으로부터 구해 준 게임

우울한 시기를 보내던 2016년 말, 우연히 중학교 때 접했던 포켓몬스터 시리즈가 기억이 나서 닌텐도 3DS와 포켓몬스터 X와 오메가루비 버전을 구입했습니다. 몇 주 뒤 마침 썬/문 버전이 나와 그것도 구입을 했는데, 그것이 제 감정을 수렁으로부터 꺼내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성과에 대한 즉각적인 보상이라는 게임의 특성, 그리고 커뮤니티의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짠 파티가 대인전 배틀에서 나름 좋은 성과를 얻으면서 자신감이 생겨, 높은 레이팅 점수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고 점수가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오랜만에 의지를 가지고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같은 취미로 뭉치는 커뮤니티가 끈끈하며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잘 보듬어 주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게임 커뮤니티에서의 성취

지금은 사라져서 볼 수 없지만, 네이버에서 포켓몬 게임 전문 블로그를 운영했었고 꽤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전부가 포켓몬을 알고 계신 분들이 아니기에 자세히 설명드리기는 어렵지만, 한국의 포켓몬 게임 커뮤니티에 '노스카'를 보급한 것, 포켓몬 육성론 게시물의 틀을 기존의 '단일 샘플을 분석'하는 방식에서 '다수의 샘플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변화시킨 것에 제 영향이 조금이나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018년에는 한국에도 배틀 정보 전문 사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ryunadb.kr라는 사이트를 열었고, 지금까지 여러 유저분들의 도움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게임 커뮤니티에서의 성취뿐 아니라 게임 내적으로도 '2018 대한민국 국대선발전 16강' '제3회 애정컵 준우승' 등의 성과를 얻었습니다.

한동안 공부는 뒷전으로

2017년부터는 전기과에서 졸업을 해야 하기에 전공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정말 맞지 않아 포기한 과목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생각만큼은 어렵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하거나 힘든 마음을 챙기느라 공부하는 시간이 전보다 줄어들었고 결과적으로 학점도 점차 떨어지게 됩니다. 마음이 힘든 데는 '학점이 낮음, 전공 관련 지식이 매우 부족함'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게임이 주는 성취감이 더욱 컸기에 필요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2019~2020년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

2019년이 되었고 대학에 입학한 지 5년째가 되었습니다. 1학기를 적당히 마치고 그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휴학을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말 공부하고 싶고,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2년 전부터 등한시해 온 수학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마침 수학 과외 알바도 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수학 교육을 업으로 삼으면 어떨까?'라는 마음에 여름에는 교직 수업도 신청해서 들어봤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교육 이론은 저와 맞지 않았습니다.

게임 커뮤니티 활동을 하다가 뜻밖의 분야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시 운영하던 게임 블로그의 이름이 '류나의 데이터베이스'였는데, 데이터베이스의 기술적인 의미는 잘 몰랐지만 포켓몬의 사용률 정보나 상위권 유저들의 파티 분석 등 '데이터에 기반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꽤 적합한 이름이었습니다. 게임에서의 사고 방식을 공부나 일에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고, '데이터 분석'이라는 분야가 제 전공과 꽤 가깝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이걸 한 번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데이터 분석에 관한 시행 착오

사실 처음부터 데이터 분석을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직 군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산업기능요원 제도를 통해 병역을 해결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IT 분야의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이 가장 쉬운 분야가 프론트엔드, 백엔드 웹 개발이기에 이쪽을 중심으로 공부하려고 했습니다. 생활코딩 등의 도움을 받아 HTML5, CSS, Javascript, PHP 등을 4개월 정도 공부하였고 그 결과물로 RyunaDB 포켓몬 계산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내가 산업기능요원이 끝나고도 웹 개발을 지속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회의적인 생각이 앞섰기에 방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2020년이 되어 데이터 분석 기술을 가르쳐주는 학원에 등록해 한 달을 다녀보기도 하고 부족한 Python, SQL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몇 달을 공부하면서 데이터 분야에 대해 느낀 점은, 일단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pandas 라이브러리를 이용해서 제 포켓몬 배틀 데이터를 처음 분석해 봤을 때의 기쁨은 상당했어요. 하지만 코딩 능력뿐 아니라 통계, 머신러닝 관련 지식 등 생각보다 알아야 할 것이 많으며,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다른 분야에 비해 어렵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남은 2020년은...

우선 지난 6개월~1년 동안 제가 준비한 것이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데이터 분석 분야 산업기능요원 편입에 도전해 보려 합니다. 최대한 많이 지원해 보고, 실패할 경우 2학기는 복학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되든 머신러닝, 딥러닝 공부를 하고 제대로 된 데이터 분석 포트폴리오를 하나 만들어 두는 것이 2020년 하반기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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